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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2021 서울시향 보리스 길트버그의 베토벤

삐-약 2023. 5. 25. 12:42

2021 서울시향 보리스 길트버그의 베토벤

2021년 12월 2일 (목) & 3일 (금) 20:00 롯데콘서트홀

 

 

Program

​훔퍼딩크, <헨젤과 그레텔> 서곡

Humperdinck, Hänsel und Gretel : Overture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Beethoven, Piano Concerto No. 2 in B flat major, Op. 19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1번 ‘겨울날의 백일몽’

Tchaikovsky, Symphony No. 1 in G minor Op. 13, ‘Winter Dreams’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서울시향의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커다란, 단단한 나무 한 그루가 무대 한 가운데 있었다.
이윽고 이번 연주의 협연자, 보리스 길트버그의 첫 음이 공연장에 울려퍼지는 순간 우뚝 선 나무에서 잎사귀가 돋아났다.
종이로 된 악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순간이었다. 피아노를 쓸어내리는 것 같은 터치로
부드러운 소리를 만들어 낸 보리스 길트버그의 연주는 그가 피아노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보여주며
지금 연주하고 있는 베토벤의 음악이 이만큼 소중하다고 말하는 듯 했다.
서울시향과 네 번째 협연인 만큼, 완벽한 호흡과 타이밍으로 협주곡의 쾌감을 모든 청중에게 안겨주었다.

차이콥스키 | 교향곡 제1번 겨울날의 백일몽

비올라의 어두운 선율이 서두를 빛냈다. 1악장은 꽤나 멋진 겨울을 보내고 있는 아이의 백일몽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잿빛 겨울이다.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두려운 현실의 겨울은 몇 번이고 아이를 꿈 속으로 도망치게 만든다.
힘찬 팡파레 속 불협화음은 뒤섞인 혼란스러움을,
고조되는 음조의 향연은 신비한 꿈으로 도망치다가도 눈보라치는 현실을 깨우치려는 듯 거대했다.

2악장인 황폐한 대지, 안개 낀 대지는 아이러니하게도 평온하다.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 땅은 체념한 어조로 말하다가도 고요함을 유지한다.
대지의 백일몽은 쓰라린 겨울이 오기 전 모든 생명을 품고 있었던 태동을 느꼈던 과거였다.
목관의 따뜻한 음색이 과거 봄을 말하듯 나지막히 노래한다.
하지만 금관의 우렁찬 목소리는 마치 신의 음성이다.
헛된 꿈에서 깨어나 말라버린 흙을 바라보던 대지는 다시 고요해진다.

거리의 사람들은 춥고 바쁘다.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3악장에 나타난 그들의 백일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춥기만 한 겨울이 아니다.
따뜻한 집에서 풍요롭고 빛이 반짝이는, 온기가 느껴지는 겨울을 상상한다.
중반부의 차이콥스키의 왈츠는 백일몽 속 무도회를 보는 듯 했다.
흥이 오른 무도회에서 팀파니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깨트린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비밀을 들키듯 백일몽에서 깨어나며 마무리한다.

쓸쓸한 겨울밤의 풍경의 4악장은 음울하게 이어지는 현악으로 아이, 황폐한 대지,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모인 춥고 배고픈 현실을 읊는 듯 하다.
이어 모두의 백일몽이 꿈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박진감 넘치게 등장한다.
후반부에 묘한 반음계가 지나가고 화려한 클라이맥스는 언젠가 풍요롭고 쓸쓸하지 않은 겨울이 오리라는 기대감과 희망이다.
웅장한 선율은 그런 기대에 확신을 더해준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