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CONCERT/REVIEW

REVIEW | 2021 서울시향 선우예권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삐-약 2023. 5. 24. 01:32

오랜만의 서울시향이었다.

수업과 병행하기 위해서 미리 잠실에 도착한 후 롯데월드몰 지하 1층에 있는 멕시칸 푸드 전문점 이터스가서 혼밥하고

코딩(이라 읽고 타자 연습이라 한다)과 밀려드는 과제 덕에 다소 급박한 카페 타임을 즐겼다.

서울시향 공연이 예당이 아니라 롯데콘서트홀이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런 소소 즐길 거리가 있다는 것 아닐까..

 


벌써 시간은 5월 말로 흘러버렸다

저번 달만 해도 공연 시간 전엔 야경을 볼 수 있었는데 오늘 공연 전에는 조금씩 어두워지는 밝은 날이었다.

공연 직전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프로그램 노트를 한 번 더 읽었다.

 
 
 
 

 

오늘의 공연은 윌슨 응 수석 부지휘자님의 지휘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연주가 예정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데이비드 이, 최수열, 오스모 벤스케, 윌슨 응까지, 최수열 지휘자님을 제외하면 서울시향 소속의 모든 지휘자님을 만나보았다.

이 시국에 공연 즐기기는 유투브로만 가능했던지라 아날로그로 듣을 때의 미묘한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게 아쉬웠는데

서울시향 서포터즈를 하면서 매달!! 그것도 격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좋은 경험을 주신 게 감사하기도 하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아무튼 결론에 말하기엔 참을성이 없어서 얼른 한 줄 써보자면

윌슨 응님의 지휘는 정말 군더더기 없는, 그러면서도 격정적으로 절제된 감정이 담겨있는 지휘를 보여주셨다.

특히 웅장함이 단연 돋보이는 브루크너 제1번 교향곡의 3악장 스케르초에서는 지휘의 엑기스...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5번

Mozart, Piano Concerto No. 25 in C major, K.503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자별로 찾아보다가 알게 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님의 첫인상은
이번 공연보다 더 무거운 터치가 인상 깊은 연주자였고, 고음보단 저음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첫인상은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바뀌었다.


공기처럼 가벼운 터치가 모차르트의 명랑함을 마구마구 발산하다가도 단조의 분위기에서
진중함과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연주였다. 인터뷰에서 선우예권님이 언급했던 대로,
모차르트의 음악에 담겨있는 양면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차이를 더 뚜렷이 알 수 있었던 건 선우예권 님의 연주여서라는 의견이다.
마침 자리가 피아노 건반이 잘 보이는 왼쪽 블록이어서 건반을 관전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피아니스트들은 좀 다른 손을 가지고 있는 건지... 피아노를 쓱 훑기만 했는데도 건반에서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왔다.
특히 카덴차는 선우예권 님이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듯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목관악기,
특히 플룻의 독주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피아노와의 화음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을 각인시켜 주었다.


옆자리에 앉으셨던 서포터즈 분과 1부가 끝난 후 목관에 대한 칭찬을 연이어 할 정도였다.
선우예권 님의 앵콜곡까지, 박수가 끊기지 않는 1부였다.

 
 

 

 

브루크너, 교향곡 제1번

Bruckner, Symphony No. 1 in C minor, WAB 101

부제가 있다. 부제는 <나 브루크너 좋아하는구나>
원래 바로크보단 고전, 고전보단 낭만을 외쳤기 때문에 놀랄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내 취향인 곡을 오래도 몰랐다는 점이 놀랍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1번은 생애 처음으로 쓴 교향곡이 아니다.
무려 세 번째 교향곡이지만, 앞 두 곡은 자신의 습작 정도로만 평가하여 0번, 00번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브루크너가 자신 있게 제1번으로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음악을 듣고 나면 납득이 가능하다.
'아, 이 정도는 되어야 브루크너가 자신의 첫 번째 교향곡으로 인정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시종일관 압도적이지만 과하지 않다. 웅장함이 계속되지만 지치게 만들지 않고 금관과 현악이 공격적으로 달려오지만 섬세하다.
이런 섬세함은 윌슨 응의 지휘가 있었기 때문에 더 돋보였다. 1악장은 브루크너의 비장함,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비교적 완만한 2악장에 비해 "움직이며, 불같이 (Bewegt, feurig)"로 시작되는 3악장에서 윌슨 응은 모든 절제된 감정을 풀어냈다.
4악장은 그야말로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보다 더 높은 곳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절정으로 치닫고 치닫고 또 치닫는다.
이렇게 장엄하고 압도적인, 그리고 금관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이 돋보임에도 불구하고 곡을 감상하는 내내 연주 속 밸런스가 완벽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윌슨 응의 군더더기 없는 지휘가 오히려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완벽함 속에서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었다. 연주가 끝난 후 끊기지 않던 박수갈채와 브라보 소리가 귀에 맴돈다.